여행記/2008, 유럽

7월 22일, 이탈리아 로마 - 콜로세움과 포룸 로마눔(포로 로마노)

클라시커 2008. 7. 23. 04:50

  로마에서의 본격적인 첫 날이 밝았다. 형식적으로는 이틀째 - 그리스의 파트라스에서 이탈리아의 바리로 넘어온 것이 21일 오전 8시였다 - 지만, 투어를 시작한 것은 오늘부터이니 실질적으로는 첫 날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아침을 먹고 빈둥대다가 9시가 넘어 느긋하게 민박집을 나섰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그리스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날씨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좀 쾌적했다. 새로운 나라, 오고 싶었던 나라에 왔다는 행복감 탓이었을게다. 그런데 로마패스를 사기 위해 떼르미니 역에 있는 인포메이션에 갔다가 지갑을 열고는 망연자실했다. 이전날 에우로스따 이딸리아를 예약하기 위해 지갑에 넣어둔 돈 - 예산 제약을 위해 지갑에는 20유로만 넣어두고 나머지는 비상금을 넣는 가방에 넣어둔다. 에우로스따 이딸리아의 예약비가 15유로였으니, 지갑에 돈이 없을 수 밖에 - 을 다 썼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그냥 왔던 것이다. 그나마도 30여분을 헤매면서 찾아간 떼르미니 역이었는데, 돈이 없으면 투어를 할 수가 없으니 뭐 어쩔 수 없이 민박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우왕좌왕한 탓에, 메트로 콜로세움 역에 도착하니 벌써 10시를 훌쩍 넘어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늦긴 했지만, 뭐 그래도 당황할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로마에서의 일수가 많지는 않지만, 단기간에 정신없이 몰아서 보는 다른 사람들보다 넉넉하게 머물 계획인데다 꼭 필요한 몇 가지만 골라서 볼 생각이라 여유롭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미 콜로세움 앞에는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표를 사기 위해서는 1시간을 넘게 서 있었어야 할 정도였지만, 로마패스를 가지고 있는 관계로 그냥 왼쪽의 '아무도 서 있지 않은' 통로로 유유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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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패스는 마치 고등학생때 가지고 다니던 급식증같이 생겼다. 플라스틱 카드 뒤에 바코드가 적혀 있는데, 이름과 성, 그리고 사용개시일자를 쓰도록 되어있다. 이 패스의 특전은 처음 두 곳의 박물관은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로마의 많은 박물관들은 바코드인식기를 통해 검표를 한다. 입장할 때는, 아래와 같은 기계에 카드를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바코드를 인식하고 입장시켜준다. 손으로 찢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좋은 사람들에게는 자칫 '효율성만 강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몇 시간이 걸려야 겨우 표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방법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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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로세움의 바깥에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서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원로원이 봉헌한 것이라고 한다. 파리에 서 있는 개선문의 원형이라고 하니, 파리에 추억이 있는 사람은 유심히 봐도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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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로세움에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쪽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황제들과 귀족들이 거주했던 빨라띠노에 들어갈 수 있다. 잘 정리된 나무들과 곳곳에 핀 야생화들이 의외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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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라띠노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포룸 로마눔에 도착한다. 이딸리아 현대어로는 포로 로마노Foro Romano라 불리는데,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탈리아어 Foro는 영어 Forum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름에 걸맞게 이곳은 로마의 정치 1번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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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가 그랬듯, 로마 역시도 시민이란 직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물론 나중에는 제정이라는 극히 반민주적인 정치체제로 변했지만, 그래도 가장 이상적인 공화정을 실현했던 나라중 하나로 손꼽힌다. 최소한 자기의 정견을 실제정치에 반영해 볼 수 있는 역사를 살아보았기 때문이다. 세계 역사상 가장 견고한 왕정체제를 보여주었던 조선시대에도 괘서, 벽서 등의 익명서를 통한 민중들의 저항은 존재했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사이버모욕죄 신설, 본인확인제 확대 등을 이용해 익명을 통한 자신들에 대한 도전을 억누르려고 하고 있다. 왕정시대에도 없던 일을 해보겠다는 그들의 삽질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