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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서적을 판매합니다' - 대학생들의 발칙한 커밍아웃

클라시커 2008. 9. 4. 21:34

  9월 4일과 5일 양일간,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한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캠퍼스에서는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성균관대 학생모임'(이하 '학생모임')의 주최로 '불온서적 판매전'이 열렸습니다. 학생모임 측은 학내 대안도서관인 '김귀정 생활도서관'(이하 '생활도서관')과 국방부가 지난 7월에 발표한 불온서적 23종 외에 추가로 60종을 선정했고,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의 처지를 생각해 준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풀무질'의 도움으로 정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도서들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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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모임과 생활도서관 학생들이 선정한 인문사회과학 서적들. 손문상 씨의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이 눈에 띈다.

  '불온서적 판매전'의 기획의도를 묻자. 학생모임 측은 '새로운 저항방식을 고민하던 차에 나온 아이디어'라고 답했습니다. 광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는 기존의 저항방법도 좋지만, 보다 더 많은 대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조금은 유(柔)하면서도 그 의도는 여전히 확실한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지요.

  확실히 국가가 정한 '불온도서'를 이렇게 넓은 광장에서 공공연하게 파는 것은 재밌는 일입니다. 예전이라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당장 남산 밑 대공분실로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갈 일이지만, 오늘날에는 단지 해프닝의 범주에 드는 '재밌는 일'입니다.왜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MB정권과 그들에게 굴복한 국방부가 21세기를 사는 '19세기 원시인'처럼 보여서일 겁니다. 여전히 전근대적인 생각을 가지고 권위주의에 기반한 통치행위를 벌이려는 이 정권이 이미 성숙하여 탈근대적 생각을 가진 시민들에게는 우습고 가소롭게만 보이는 거지요.

  이런 재밌는 '데모'에 학생들도 마음이 동하였는지, 하나둘 와서 책들을 떠들어봅니다. 개중에는 '좋은 책들을 싸게 살 기회'라며 지갑을 흔쾌히 여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어떤 책을 살까?" - 유심히 책을 보는 학생 뒤로 많은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오던 학생들이 진열된 책들을 관심있게 보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번 판매전의 후속격으로 열릴 '강연회'의 연사를 학생들이 직접 뽑는 즉석 거리 투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학생모임 측은 '판매전을 통해 학내에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한 편, 강연회를 통해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포부도 밝혔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진보신당 당원들이 지향하는 '생활 속 진보'를 이루는 한 방편이겠지요.

△ 학생들이 직접 강연회 연사를 뽑는 거리투표 현장. 의외로 두 대표님을 제치고 홍세화 선생님이 현재 선두다. 두 대표님은 분발하셔야겠다.


  누군가 '이제는 진보의 공을 80년대의 대학생들에게서 지금의 대학생들로 넘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모두 진보진영의 세대교체 필요성을 절감했지만, IMF를 겪고 '이상'보다 '현실'을 쫓는 풍조가 대학생들 사이에 퍼지면서 '20대 보수화론'이 나돌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이미 우리는 5, 6월의 광장에 쏟아져 나온 젊은 세대들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들 모두가 진보적 가치에 공감하여 나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이 보수 언론들의 평가처럼 정치 무관심으로 인해 '불의에 눈을 감는' 세대들은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지요. 대학생들은 보수화 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진보'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기존의 이념대립과 세 대결을 통한 맹목적 투쟁이 아닌,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진보적 가치 말이지요. 그런 맥락에서, 성대 학생모임의 '불온도서 판매전'은 비록 그 규모는 작았지만 새로운 진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학생모임의 한 학생이 제프 일리의 'The Left'를 펼쳐 보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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