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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클라시커 2008. 8. 25. 00:19

  오늘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신앙보다는 이성을 따르는 것이 옳다며 '과학인'을 자처하더니 드디어 '돌아온 탕아'가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반은 그렇고 반은 아니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유럽에서 확실하게 배운 것이 한 가지 있다. 영미권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성경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남들이 뻔히 다 알고 있는 이야길 뭐하러 하냐고 묻는다면 민망하겠지만, 그들의 수많은 행위들이 생각보다 많이 성경구절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게 이번 여행의 성과였다. (하다못해 인종차별까지 성경 속 구절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전해진다. 물론, 성경 구절을 통해 그들의 악행을 합리화했을 거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궁금한 사람은 창세기 9장 18절부터 29절까지를 참고하라.)

  더욱이 내가 이해하고 싶은 미술사의 경우에는, 중세 시대 근처에 그려진 수많은 작품들이 모두 성경 속 인물이나 사건을 배경으로 제작된 탓에 반드시 성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미소년의 몸에 왜 화살이 꽂혀있는지, 사자와 함께 등장한 저 남자는 대체 누군지 알기 위해선 성경 속 이야기들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성경에 대한 이해'하니까 또 불현듯 이 사람이 생각난다. 이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이런 표현을 썼다고 했다.

'하나님이 내리신 대통령'

  근대 이전 '왕권신수설'의 재림인 모양이다. 판사의 배에 석궁을 박은 일보다 그로테스크한 이 구호에 그는 소수 개신교인들의 영웅이 되었고 -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누가 배짱 좋게 서울을 하나님께 바치겠는가 - 지금은 개신교를 기반으로 한 수구들의 '근 10년 내 유일하게 좌익 친북 세력과 당당하게 맞짱을 뜬 영웅'이 되었다.

  헌법을 읽다가 발견한건데,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교가 없다는 사실과 함께 정교분리가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종교의 개입 정도가 상당하다. 변양균과 신정아를 이어준 것이 사찰이었던 사실이나 근자에 어청수가 경찰 대부흥성회를 열었다는 추접스러운 소리를 꺼낼 것도 없이, 많은 유력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각 종교의 수장들을 찾는 것만 해도 그렇다. 아마도 그것은 종교와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다수의 한국인들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내가 믿는 종교이기 때문에 나와 그 종교를 동일시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수가 많기 때문에 종종 선거는 종교 간 표대결로도 이루어진다. '10년 동안 천주교에서 대통령을 해먹었으니, 이번엔 우리 개신교에서 해먹어보자.' 이번 대선 때 나돌았던 이야기 중 하나다. 내가 봤을 때는 단순히 확률 상의 우연이었음에도 그 사람들한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누군가 그랬다. 서양의 자유주의 사상에 길들여진 서양인들은 '자기 지향의 사고'를 보이는 반면, 일본인과 한국인은 '사회 지향의 사고'를 보인다고. 서양인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정말 '개인적인 사실들'을 이야기하는 반면에, 일본인이나 한국인은 어떤 집단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또한 서양애들은 my를 쓰지만, 특히 한국인들은 we를 쓴다는 거. 자신과 함께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이쯤되면 거의 나는 주체가 아니라 객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이 자신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