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 정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들여 준비했던 '민주주의 2.0'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이 '노공이산'이란 필명으로 올린 환영사 겸 감사인사에서도 읽을 수 있듯, '민주주의 2.0'은 개방과 공유를 원칙으로 하는 웹 2.0 정신을 정치토론에도 적용시켜보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전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는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정치부 차장의 말 마따나, 그동안의 전임 대통령들이 '청빈한 29만원',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등의 발언으로 도움은 커녕 물의만 일으켰던 것을 생각하면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인 다양성을, 토론을 통해 제고해 보자는 그의 이번 행보는 새롭다. 1
이러한 '새로움'에 대해 그의 이해관계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5년 내내 갈등을 빚어왔던 현 집권당은 우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MB의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서, 역지지를 받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번 움직임이 자칫 정계변혁의 신호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사실여부를 떠나 '노무현 정권의 비판적 지지세력'이란 평을 들었던 한겨레 신문은 이번 일에 대해 신중론을 폈다가 조중동과 같은 편에 몰리고 말았다. 촛불정국에서 '집단지성'의 현실적 사례로 주목을 받았던 아고라 역시, 민주주의 2.0의 바람을 피하지는 못했다. 아고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 중 일부가 민주주의 2.0으로 옮기겠다며 아고라를 털고 일어난 것이다. 2
따라서 의도치 않았지만, 민주주의 2.0과 아고라의 세 대결 양상도 벌어지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수성론(守城論)과 외연확대론으로 볼 수 있다. 촛불정국에서 '토론의 성지'란 칭호를 얻은 아고라를 이어가자는 쪽이 수성론이라면, 더 나은 시스템을 자랑하는 민주주의 2.0으로 옮기자는 것이 외연확대론이다. 엄밀히 말해, 원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외연확대론이 더 타당성이 있다. 진보란 것의 속성상, 단결보다는 연대가 더 적성에 맞을 뿐더러 '조-중-동-문'이라는 강력한 여론생산 기제를 가지고 있는, 현 정권을 위시한 수구 세력에 효율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비수구 세력' 역시 다양한 미디어 루트를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3
게다가 '자발적 투쟁'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아고라는 이제 이빠진 범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아고라를 지배하는 사고는 '내 편, 네 편'의 사고다. 요즘 유행하는 말대로, 거리에 나선 시민들 간에는 '총론은 같으나 각론은 약간씩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고라는 '애국과 매국'의 프레임으로 나와 타인을 규정하고 있다. 이런 압제 속에서 민주적 다양성이란 숨을 쉴 수가 없다. MB의 대부분의 실정에 실망감을 표하는 사람일지라도, 일부의 정책에 옳다는 이야기를 하면 바로 알바로 낙인찍히는 일마저 벌어지고 있다. 경제방에서 활동하던 한 논객이 단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가상의 집단 린치를 당한 사례도 있었다. 이 '명쾌한' 프레임은 각각이 지닌 고유의 속성을 은폐하고 사실을 왜곡해서 우리를 눈멀게 한다. 이런 '명쾌함'이 가져온 왜곡의 사례는 바로 IT과학 방에서 베스트로 올라가고 있는 황우석 박사 관련 게시물들이다. 한 시점, 한 공간에 PD수첩으로 흥한 자와 PD수첩으로 망한 자가 공존하고 있는 이 웃지못할 현상은 황우석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가 설정한 '애국'의 프레임 속에 갇혀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고라 일부의 애국주의, 전체주의 분위기 속에서는 촛불집회건 황우석이건 그저 한일전 축구경기로 치환해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2.0이 아고라의 대안인 것은 아니다. 물론 개략적으로 바라본 민주주의 2.0은 아고라에 비해 보다 순도높고 심도깊은 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곳이다. 현재 아고라의 운영을 맡고 있는 다음과 같이 종합포털이 아니라, 오로지 토론만을 위해 조성된 장소라는 점은 그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술집에서 친구들과 하는 난상토론과 100분토론의 진행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더욱이 민주주의 2.0은 덧글보다 게시글을 좋아하는 시스템이다. 각각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글에 '발제', '의견', '질문', '답변', '보론'의 말머리를 붙여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더욱 명확하게 다른 시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늘 하드웨어가 좋다고 해서 시스템이 좋은 것은 아니다. 아고라에 비해 민주주의 2.0에 없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성'이다. 현재 민주주의 2.0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수의 논객들은 지난 정권에 꽤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보인다. 지난 20일에 지면에 등장한 한겨레의 사설, '전직 대통령의 토론 웹사이트 개설 유감'에 대한 두 사이트의 반응을 보면 이러한 '낭설'이 근거없지만은 않아보인다. 아고라가 이 사설에 대한 반응 이외에도 여전히 촛불집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반면, 민주주의 2.0은 이 사설에 대한 게시글들로 채워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 2.0은 이 사설에 대해 '편향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한겨레의 논설이 사실에 맞지 않다면 반드시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2.0을 차지하고 있는 게시글들에서는 비판보다 성토의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한겨레의 '신중하자'는 의견에 '조중동과 같다'라는 반응을 보인다든지, '한겨레는 무능하니 닥치고 폐간해라', '한겨레 끊겠다'라는 식의 게시글이 올라오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환영사에서 밝힌 '자유로운 대화, 깊이있는 대화'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오히려 '너와 나는 생각이 다르니 너를 배척하겠다'는 요지의 이러한 발언들은 '나는 너희가 시끄러우니 담 쌓겠다'는 MB의 명박산성에 깔린 논리에 더 가깝지 않은가. 더욱이 이들 중 상당수가 엊그제까지는 '한겨레, 경향=우리편=만세!'를 외쳤던 사람들임을 감안하면, 하루아침에 '언론의 중립성' 운운하는 그들이 우스워보이기도 한다. 4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누가봐도 신자유주의의 첨병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이를 보고 마치 노무현 씨가 북유럽식 사민주의의 대변자인양 추앙받는 그로테스크한 현실이 민주주의 2.0에서는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그저 노무현이라는 개인에 매몰되어 앞뒤 정황과 팩트를 살펴보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터가 현재 민주주의 2.0의 수준이다. 이러한 '노무현 프레임'을 떨쳐낼 때야 말로 민주주의 2.0이 아고라의 경쟁자로 등장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 전까진, 지금 대문에 붙어있는 대로 어디까지나 베타(beta)일 것이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새로운 '진보 포털'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시민들이 활동하고 있는 '아고라' 역시 자본에 종속된 '다음'의 소유물인 만큼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는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자본을 통해 모든 것이 재단되는 현실에서 그러한 걱정은 타당하다. 그러나 기왕이면 갈려나갈 생각보다는 현재 있는 것을 정상화한 이후에 차선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현재 있는 것을 일종의 훈련장으로 삼아 더 많은 논객들을 키워낸 후에 진보포털의 번영을 생각해도 늦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쓰지는 않았다. 나는 그냥 내가 본 대로 이야기했을 뿐이고, 내 사상의 자유에 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것 중 틀린 것들에 대한 지적을 바란다. 예컨대, 민주주의 2.0에 하얀설원님이 올리신 '당신은 아고라를 욕할 자격이 있는가?'란 글은 아고라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 일변도였던 내 생각을 조금이나마 수정해 주었다. 논리에는 논리로 맞서고, 원칙은 준수하자. 이것이 우리가 소위 '알밥'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이며, 현재의 정치활동을 통해 우리가 얻어갈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다.
-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8년 9월 21일자 기명칼럼, '盧 문제만 나오면 한겨레신문과 한나라당은 같은 편?' [본문으로]
- 윗 링크 참조 [본문으로]
- 단결이 '올 포 원, 원 포 올(All for One, One for All)'의 군주정적 전체주의를 의미한다면, 연대는 '개개 단체의 의도가 반영된 단합'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 여담이지만, 이 현상은 하나의 발제에 가지를 쳐나가는 식의 논의를 통해 제대로 된 토론을 해보자는 민주주의 2.0의 기본설치목적과는 상이한 것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환영사에서 밝힌 '덧글 놀이식의 토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사례다. 이는 아직까지 논객들이 민주주의 2.0의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서라기 보다는 그들이 진정한 토론의 방법을 체득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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